박정희 대통령 마지막 경호원

조회 수 2129 추천 수 0 2012.07.27 02:29:22
SunShine *.214.248.163

[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박정희 대통령 마지막 경호원’ 박상범 前경호실장

 

1978년 3월 경북순시후 朴대통령이 나만 불렀다…
“내가 18년 됐지? 20년 되는 해 물러나야겠다”

《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진 1974년 8월 15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에서 문세광을 향해 권총을 빼들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막아섰던 사람. 5년 뒤인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중앙정보부 측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으나 현장에 있던 청와대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 청와대 경호실의 산증인이자 불사조로 불리는 박상범 전 청와대 경호실장이 ‘그날 그 현장’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

1979년 10월 26일 금요일 오후 7시 41분 궁정동 안가.

“각하, 이따위 버러지 같은 놈(차지철)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 너 이 새끼 차지철, 죽일 놈!”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차지철 경호실장을 쏘았다.


“무슨 짓이야! 김 부장!” 박정희 대통령이 호통을 쳤다.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김재규는 박 대통령에게 총을 쐈다.

그 순간 박선호(중정 의전과장·1980년 5월 24일 교수형)는 대기실에 있던 안재송(경호부처장)과 정인형(경호처장)을 죽였고, 박흥주(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1980년 3월 6일 총살형)는 주방에 있던 김용섭(경호관) 박상범(수행계장)을 쏘았다. 그날 그 현장에서 박 전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상범 수행계장.

세상 사람들은 비극적인 현대사의 현장에 있었던 그로부터 ‘그날 그때’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지만 그는 입을 닫아 왔다. 훗날 청와대 경호실장을 거쳐 보훈처 장관까지 지내며 주요 공직을 거쳤지만 인터뷰를 극구 사양해 왔다. 6년 전 한 월간지에 인터뷰가 실렸지만 10·26과 관련한 민감한 사안들은 비켜갔다.

1975년 남대문상가 돌아보는 박정희 1975년 서울 남대문 지하상가를 돌아보며 서민들과 이야기 나누는 박정희 전 대통령. 오른쪽부터 장녀 근혜 씨(전 한나라당 대표),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 차녀 근령 씨. 동그라미 안이 근접경호를 하고 있는 박상범 당시 수행계장이다. 박상범 씨 제공

―왜 침묵했습니까.

“각하와 육영수 여사를 지키지 못한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게다가 경호를 통해 얻은 내부 정보는 발설하지 않는 게 직업윤리입니다.”

그가 ‘그날’을 겪은 충격에 오래 괴로워했음이 느껴지는 말과 표정이었다.

올해 10·26에 맞춰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자는 6개월가량을 설득해 왔다. “대선정국인 내년에는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가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등장한 상황에서 10·26 증언은 올해가 객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마지막 해”라는 게 설득의 변이었다. 그가 인터뷰 결심을 전해 온 것은 이달 18일이었다.

이튿날 서울에서 만난 그는 인상은 부드러웠지만 무인(武人)의 풍모가 강하게 느껴졌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가부좌 자세가 세 시간의 대화 동안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사진촬영 때를 제외하고는 웃옷도 벗지 않았다. 오랜 신체단련으로 군살 하나 없는 몸은 예순여덟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꼭 32년 전이지요.

“네…. 삽교천 방조제 행사를 마치고 (박 대통령이) 점심 식사 후 헬기로 (청와대로) 들어오셨어요. 오늘은 일이 끝나나 보다 했는데 저녁 때 갑자기 출타하신다고 연락이 왔어요. 저와 수행과장, 경호원 한 명이 차 한 대로 움직이고 경호처장님은 각하 차에 동승해 2대가 움직였습니다.”

10·26 유일 생존자 10·26 당시 궁정동 안가 현장에서 청와대 관계자 중 유일하게 총탄을 맞고도 살아남은 박상범 청와대 전 경호실장.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궁정동 안가와의) 거리는 얼마나 되죠.

“청와대 바로 옆이죠. 보통 두 달에 한 번꼴로 가셨죠. 비공개로 사람을 만날 때 활용하던 곳입니다.”

―뭐 이상한 느낌은 없으셨어요.

“없었어요. 경호원들은 안방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전혀 모릅니다. 안가 주변을 이리저리 경계하다 식전(食前)이라 시장기를 없애려고 주방으로 들어섰죠. 쭈그리고 앉아 한술 뜨려는 순간 갑자기 ‘탁’ 하고 집 전체가 정전이 됐습니다. 곧이어 바깥 현관 쪽에서 ‘탕 탕 탕’ 집중 사격 소리와 함께 후다닥 사람이 쳐들어 왔습니다.”

―총을 맞았나요.

“네 발을 맞았습니다. 총을 뽑으며 벌떡 일어난 상태에서 한 발은 오른쪽 척추 옆을 관통하고 다른 한 발은 벨트에 찬 실탄에 맞아 튕겨 나가고. 두 발은 웃옷 좌우를 아슬아슬하게 뚫고 나갔죠.”

박 전 실장은 뒤로 쓰러지면서 머리를 부딪혀 의식을 완전히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깨어 보니 국군수도통합병원 병실이었다. 피를 흘리며 10시간가량 방치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으니 말 그대로 구사일생이었다.

“27일 아침이었습니다. 제 병실은 경비가 삼엄했습니다. 제일 먼저 면회 온 사람이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괜찮냐’ ‘괜찮습니다’ 간단한 대화가 전부였습니다. 며칠 후 병원장으로부터 ‘모두 죽었다’는 말을 들었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있다가…경호상의 실수는 주로 그런 때 일어나는데…손도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당했습니다.”

마지막 말에는 살아났다는 안도감보다 경호를 못 했다는 자책과 죄의식이 실려 있었다.

―당시 권력 내부 사정을 전혀 몰랐나요.

“저는 경호를 하는 사람이지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이미 박 대통령 서거 후 모든 것을 포기한 상황이었습니다. 삶을 접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멍하니 살았으니까요. 병실에 누워 대통령 영구차 나가는 것을 TV로 보면서 괴로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12·12가 났고 최규하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경호실은 모두 해체된 상태였습니다. 저도 사표를 냈고요. 의전 수석이 어느 날 ‘경호실을 재건할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고 전화를 걸어와 성치 않은 몸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 10년 모셨죠. 박 전 대통령은 어떤 분이셨나요.

“허허벌판에 포항제철이 들어서고 고속도로가 생기는 것을 제 눈으로 봤습니다. 헬기로 전국을 다니며 땅을 한참 둘러보시고는 혼잣말처럼 ‘됐다, 여기다’ 이런 적이 많았습니다.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며 살던 분이었습니다. 업무적으로는 굉장히 철저한 분이어서 다들 어려워했죠. 상대를 쏘아보는 듯한 강렬한 눈빛은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박 전 실장은 “하지만 참 정이 많은 분이었다”고 했다.

“74년 7월에 큰 장마가 있었어요. 신도림동 뚝방 근처 18평짜리 개인주택에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지붕까지 잠겼습니다. 2박 3일 휴가를 내고 달려갔죠. 다음 날 직원들이 라면하고 구호품을 들고 왔습니다. ‘각하께서 너를 찾으셔서 보고를 드렸더니 빨리 가봐라’고 해서 왔다는 겁니다. 저 같은 졸병들한테까지 마음을 써주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한 달 뒤에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이 터졌죠.”

―문세광을 향해 정조준하는 모습이 당시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습니다.

“전 커튼 뒤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땅’ 하는 소리가 들려 바로 튀어 나갔지요. 문세광이 무대 쪽으로 총을 쏘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각하께서 연설대 밑으로 피하는 동시에 앞으로 튀어 나간 저에게 ‘우리 내자는 괜찮으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공개된 사진 중에 제가 정조준 상태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휙 돌린 사진이 있는데 각하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여사가 계신 쪽을 돌아본 거죠. 여사는 이미 총에 맞아 고개를 왼쪽으로 떨군 상태였습니다. 문세광은 현장에서 검거됐습니다. 모든 일이 불과 3, 4초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육 여사 사후 박 대통령께서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많이 방황하셨던 것 같아요. 약주도 좀 많이 하시고. 몇 번 취하셨을 때는 ‘박 군아, 업어라’ 하셔서 업어 드리기도 했습니다.”

―가벼웠나요.

“그럼요. 체구가 워낙 작은 분이셔서….”

―당시 영부인을 큰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행했지요.

“가족 경호팀이 따로 있어서 공식행사 말고는 직접 접촉한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박 전 대표 행동을 보면 박 전 대통령 모습이 많이 겹쳐집니다. 뭐든지 기록하는 거나 어떤 일이 터져도 의연한 거나 아버지를 똑 닮았다 여겨집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의연함을 보여준 또 다른 기억을 꺼냈다.

“76년 어느 날 주말에 지방에서 올라오는 길에 서울대 사범대학 정문 앞을 지나는데 학생들이 막 돌을 던지는 거예요. 데모가 심했던 때였거든요. 각하께서 갑자기 차를 세우시더니 캠퍼스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아닙니까. 학생들이 모두 사라져버려 별일은 없었지만 경호하는 입장에서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죠…궁정동에서 총을 맞고 숨이 끊어지는 상황에서도 ‘나는 괜찮네’ 하셨던 분이에요. 그게 마지막 말이었죠. 결국 유언이 되어버린 그 말 한마디엔 생사를 초월해 죽음에 담담한 마음, 최후의 순간에도 남을 먼저 걱정했던 마음이 담겼다고 봅니다. 아무나 못 하는 거거든요.”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가까이서 보면 허물이나 약점이 보이는 법인데요.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하셨던 분이었어요. 늘 깔끔하고 흐트러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허점을 안 보이려고 무척 노력하셨죠. 지방 출장 때 호텔에서 주무실 때도 빨랫감을 스스로 정리해 가방에 차곡차곡 넣어 ‘박정희’라는 이름표까지 달아 문 앞에 딱 내놓는 분이었습니다. 70년대에 물 절약하자는 운동이 있었잖아요. 경호팀이 수시로 거주하시는 곳 이곳저곳 점검을 하는데 어느 날 양변기 물통에 벽돌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누가 흉기를 넣은 게 아닌가 잔뜩 긴장했죠. 알고 보니 물을 아끼려고 직접 넣어 놓으신 거였어요.”

―가끔 폭음도 하셨다면서요.

“약주를 즐기긴 하셨어도 인사불성으로 취하신 적은 없습니다.”

박 전 실장은 이 대목에서 10·26 한 해 전인 1978년 3월 박 대통령과 나눴던 개인적 대화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경상북도 순시를 하고 구미 관광호텔에 하루 묵으신 다음 날이었어요. 여느 날처럼 새벽 6시에 일어나 산책을 나가셨어요. 대통령도 저희 수행원들도 모두 쓰레기봉투를 들고 따라 나섰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산책을 나갈 때 늘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박 군만 따라오라’ 하셔서 저만 따라 나갔습니다. 말없이 한참 걷다가 벤치에 앉았는데 ‘같이 앉으라’ 하시고는 ‘집은 샀느냐’ ‘가족들은 건강하냐’ 물으셨죠. 그러더니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내가 (집권이) 18년 됐지? 지금 정리를 하고 있는데…. 20년 되는 해에 전격 하야하고 떠나야겠다. 어때? 그러는 게 좋겠지?’ 물으시는 거예요. 그냥 한 번 생각난 김에 툭 던진 말이 아니라는 게 표정에서 다 느껴졌습니다. 속으로 너무 놀랐죠.”

―뭐라고 답했나요.

“감히 제가 뭐라고 해요. 그날 전 너무 놀라 며칠 멍하게 보냈습니다.”

그는 1979년 그날 이후 매년 한두 번씩은 꼭 박 전 대통령을 꿈에서 본다고 한다.

“생전에 일하시던 모습 그대로 보여요. 그러면 잠을 못 잡니다. 가슴이 무너지기도 하고 우울해지고 허무해지고.”

시종일관 온화했던 그의 얼굴에 그늘이 스쳤다. 그러더니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삿갓

2012.07.28 23:00:45
*.95.1.53

생생한 증언입니다.   위인의 위대함을 덧보이게 해주는 증언이구요. 역사에 바로 기록될수있도록 이번 선거가 잘 되었으면 합니다.

백운대

2012.07.29 12:27:33
*.162.209.221

역시 보통 정치인들이 접근하지 못 할 큰 그릇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7 식품첨가제 피해줄이는 법 [2] 백운대 2012-09-14 2008
236 Cinnamon and Honey [6] 백운대 2012-09-13 1906
235 등산하다 진드기 물렸는데 [1] 백운대 2012-09-03 2096
234 "대마도를 찾아오자" [3] 백운대 2012-08-26 1965
233 좋은 친구 ‘한 명’이 수명 연장시켜줘 [3] SunShine 2012-08-23 2071
232 친구로 부터 온 좋은 글... [2] 개나리 2012-08-20 1971
231 앞으로 20년 후에 당신은 저지른 일보다는 [4] 백운대 2012-08-15 2006
230 박정희가 지키고 김대중이 버린 獨島와 7광구 [2] SunShine 2012-08-15 2376
229 함박눈 내리는 설경으로 여름을 시원하게.. [1] SunShine 2012-08-14 2250
228 시마네현 촌것들 다스리는 법 [7] 김삿갓 2012-08-10 2131
227 한잔의 Tea file [4] Scott Kim 2012-08-09 2607
226 알고 계시는가 ? [1] 망일산 2012-08-09 2366
225 DSLR은 Digital Single Lens Reflex의 약자 [2] 백운대 2012-07-29 1963
» 박정희 대통령 마지막 경호원 [2] SunShine 2012-07-27 2129
223 인맥관리 18계명 / 탈무드 [2] 백운대 2012-07-24 2217
222 안 교수가 자신의 부족한 네 가지를 어떻게 채울지가 남은 숙제입니다. [1] WCR 2012-07-22 2257
221 저런 미친놈들도 있나! [2] SunShine 2012-07-19 2220
220 Backpack 퍼온글 2012-07-11 1839
219 Layering 퍼온글 2012-07-11 2156
218 기초사진 촬영상식 [2] 백운대 2012-07-08 2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