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2011

카트만두에서 라사로 가는 비행기가 10시 30분에서 10시 55분으로 25분 연기됐다고 비행정보판에 나온다. 결국 11시 15분에 출발하여 12시 20분경에 라사에 도착했으니 비행시간은 1시간 정도. 라사 시간은 카트만두보다 2시간 15분이 빨랐다.

 중국에는 전국을 하나의 시간대로 한다지만 왜 하필이면 15분의 차를 두는지 의아했다.

 비행도중에 왼쪽 창문으로 눈 덮인 고산들이 구름위로 솟아 있는 히말야 산들의 연속되는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에베레스트 산을 지날 때는 승객들이 흥분하여 제각기 카메라를 창문 쪽으로 돌려 열심히 사진을 찍기도 했다.

카트만두에서 티베트의 공가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본 히말라야 산군(山群)

공항에서 입국 수속 절차는 여러 부서를 거칠 때마다 passport, visa를 체크하며 까다로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손가방까지 낱낱이 열어서 혹시 티베트 대만에 대한 책이라도 있으면 압수된다고 했다. 첫인상부터가 티베트 사람들은 지식과 정보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에 우리를 기다리는 가이드 Nima Dorjee를 만났다.

공가 국제공항은 새로 단장하여 깨끗하였고 공항에서 라사 시내로 가는 길도 2008년 북경올림픽을 계기로 현대식으로 만들어 지난 7월 17일(2011) 개통하였하며 New Century HWY라고 부른단다. 북경에서 라사까지의 철도도 완성하여 공항 바로 옆에 터미널을 만들었다고 들려줬다. K호텔에 도착, 저녁식사 후 시내를 조금 걷는 중 해발고도가 3650m(11,450ft)라 머리가 약간 어질하고 고산증이 올 것 같아 돌아와 일찍 잠을 청했다.

Lhasa-Gonggar Airport Highway; 2009년 4월 28일에 시작하여 지난 7월 14일(2011)에 완성된 티베트의 첫 하이웨이(38km)

10월 24일

우리가 먼저 찾아간 곳은 Drepung Monastery, 1416년에 Jamjang Choje, Gelugpa Sect의 창시자인 Tsongkhapa의 제자에 의해 지어진 이곳은 1959년 이전에는 티베트에서 가장 큰 수도원으로 1645년 포탈라 궁을 짖기까지 Dalai Lama들이 살았던 곳이었으며 10,000명이 넘는 monk들이 살았을 때도 었다고 한다.

Drepung Monastery 입구

 

Dalai Lama가 앉았던 자리에 1959년 이전에 독립국가로서 쓰였던 통화(돈)도 전시되어 있었고 티베트인들이 이 자리를 향해 절을 하고 경배하며 하루 종일 벌어도 $10 이 안 된다는 티베트인들이 돈을 두고 간다.

 Dalai Lama가 살던 곳을 여기저기 구경한 후 이곳의 승려들을 위한 부엌을 가보니 그 규모가 마치 무슨 큰 공장 같은 인상이다. 밥솥이 목욕탕 같은 크기며 다른 솥들의 크기도 마찬가지. 드레풍의 뜻이 “Rice Heap"인 이 수도원에서 내려다보이는 넓은 농토였던 수도원의 땅들은 중국당국에 몰수되어 이제는 집들이 들어서고 주거지역이 되고 있었다.

Drepung Monastery에 있는 Ganden Phodrang; The residence of Dalai Lama

Jokhang Temple과 Barkhor Square in Lhasa

오후에는 조캉템플로 갔다. 호텔에서 걸어서 불과 5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었다. 이 템플은 티베트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신성시 되는 건물이다. 639년에서 647년 티베트의 5대 왕이면서 티베트의 전성기를 일으켰던 Songsten Gampo가 그의 세 왕비 중 네팔에서 온 왕비가 가져온 불상인 Akshobhya를 모시기 위해 건축하게된 것인데 차츰 증축하여 지금의 형태가 됐다고 한다.

 그 당시 강국이었던 티베 주변의 국가인 네팔 중국에서 각각 왕비를 보내왔는데 티베트의 왕비만 아들을 낳았다고 하며 이 템플에는 세 왕비와 그 아들 그리고 송스텐 감포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1959년에 티베트를 모택동이 점령할 때 그 이유를, 중국이 당나라 때 문성공주(Won Cheng)를 티베트 왕에게 시집보냈기 때문이라 약한 티베트를 짓밟아 중국은 온갖 지하자원을 공짜로 갖게 된 것이다. 국가는 우선 힘을 길러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 당시 티베트는 국민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힘이 없었다고 Nima가 말했다.

조캉 템플 주위에는 티베트의 여러 곳에서 순례자로 온 사람들로 분비고 손에는 spinning prayer라는 뺑뺑이 같은 마니차를 들고 돌리면서 조캉 템플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문성공주가 송첸감포에게 시집오면서 가지고 왔다는 석가모니 불상 외 많은 부처와 달라이 라마 상들을 모셔놓았다. 사진 촬영지.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실내에 이렇게 많은 불상을 모셔 놓았으니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기도하는 티베트인들의 모습은 경건하기만 하다.

 템플을 나와 인파에 묻혀 시계방향으로 걸어보면 양편으로 관광객을 상대로 온갖 상점들이 빼꼭히 차지하고 있어서 무슨 순례길 같은 느낌 보다는 시장바닥이다.

 이곳에는 다른 관광지와는 달리 티베트 관광책 뿐만 아니라 아예 책을 파는 곳은 하나도 없다. 중국 당국이 티베트를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니 책이 있을 수가 없다. 라사의 호텔에는 중국중앙방송인 CCTV외는 방영을 금지하여 영어로 된 방송은 물론 다른 언어로 된 외국방송은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철저한 바보 만들기 작전인 것 같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 영어 채널이 없다고 불평을 했더니 전 라사에 영어 채널이 없다고 대답했다.

 거리에는 총을 든 소대 병력 군인들이 가끔씩 순찰을 하는 모습을 본다. 근처의 Barkhor Square에서 2008년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인들의 시위를 철저하게 진압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Jokhang Temple 내의 달라이 라마가 머물던 집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가쵸가 1959년 인도로 망명하기 전 이 곳을 방문했을 때 사용했다는 금빛 건물이 있고 그 바로 오른쪽에 템플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Jokhang Temple 지붕 위에서 본 Barkhor Square

Potala 궁은 하루 전에 passport를 보여 신원확인을 받은 후에 또 들어갈 때는 비행기 탑승 때 행하는 보안 검사 과정을 거쳐야 하고 1시간이네 궁내의 구경을 마쳐야지 위반하면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가이드 라이선스는 매년 갱신을 받아야 하는데 이때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Potala Palace는 Songsten Gampo가 7세기(637)에 명상하기 위해 지은 것이 시초인데 번개불로 인한 화재로 대부분이 파괴된 것을 제5대 달라이 라마인 Lozang Gyatso가 현재의 규모로 크게 증축하게 했으며 이곳에 안치된 5대부터 13대까지 달라이 라마의 묘소 중 그의 묘소가 가장 크고 웅장하 황금 3,721kg 을 포함하여 수많은 보석들로 치장되어 있다고 그의 묘소 안내판에 쓰여 있었다.

 수많은 부처상들과 달라이 라마가 살면서 사를 이끌었던 방들, 만트라를 보관하는 방들, 어둡고 좁은 골방과 모두 1000개가 넘다는 많은 방, 송스텐 감포가 기도용으로 사용한 동굴의 모습 구경했다.

 이런 내부의 모습은 일반인들 사진촬영을 못하게 되어 있었다. Marpo-Ri 산 전체를 차지한 이 장엄한 113.7m, 13층으로 된 포탈라 궁에서는 라사 시내를 내려다보는 훌륭한 전망이 있었다.

 

 

 10월 26일

아침 8시가 됐는데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는다. 오늘 아침은 기온이 낮아서 조끼에 wind breaker를 겹쳐 입어야 했다. 9시 가이드 니마와 운사가 호텔에서 우리를 픽업해서 1시간 30분 거리인 Wangbur Mountain, 고도 3800m(12,467ft) 위에 있는 Ganden Monastery로 향했다.

 중국당국이 아스팔트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라사강의 남쪽편에서 서쪽으로 강을 따라 가는 길 양편에 가로수를 심어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한 주변의 산들과는 대조가 되는 도로였다. 티베트의 평균고도가 3000m 이상이니 모든 산이 이렇게 나무가 자라지 못하여 벌거숭이 산이다. 이런 쓸쓸하고 외떨어진 곳에도 티베트인들의 집이 가끔 나타난다.

 그리고 검은 색 계통의 옷을 입은 티베트인들이 길을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라사의 조캉 사원으로 순례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싸늘한 기온인데도 삼보일배, 오체투지로 길바닥에 앞으로 드러 눕고, 일어나 또 걷고 엎드리고, 하여 라사의 조캉 사원으로 일년에 한번씩, 혹은 일생에 한번씩, 순례길을 각지에서 걸어서 다고 한다.

 사는 곳이 국경으로 막히고, 종교로 갇히고, 중국의 자유압제에서 지도자 없는 그들이 알고 보는 것이라고는 옛날의 종 풍습과 전통 뿐인 것 다.

Ganden Monastery로 가는 길에서 만난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티베트사람들

산 입구에서 “Ganden Monastery Traveler's Ticket Office"라는 곳에서 가이드가 입장표를 구입하고 이제부터는 찻길이 높은 산으로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산비탈에 Yak가 마른풀을 뜯어먹고 있다.

Ganden Monastery로 올라 가는 길

Ganden Monastery를 배경으로--

 수도원 주차장은 관광객을 싣고 온 차량들이 많았지만 포장이 되어있지 않아서 세찬 바람이 불면 먼지가 온 사방으로 뿌옇게 휘날린다.

 우리는 우선 이 산의 윗부분을 한 바퀴 도는 트레일을 걷고 난 후에 사원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고 4500m의 고도 까지 걷는 하이킹을 시작했다.

 입구에는 중국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건물과 경비를 하는 군인들이 많이 보였다. 가이드는 군인들을 사진 찍지 말라고 미리 당부했다.

언덕에는 수 없이 많은 룽따가 바람에 펄럭이고 쥬니퍼 향을 불 사르는 연기가 뿌옇다. (티베트인들은 여름철에 높은 산에서 쥬니퍼를 채취하여 말렸다가 이런 곳에서 팔고 있다고 한다.)

 

 

가파른 계단을 계속 올랐더니 약간 어질하고 숨이 가빠서 한발짝 한발짝 천천히 걸어 올라가야했다.

트레일을 걷다가 니마는 티베트인들의 sky burial에 대한 풍습을 들려준다. 이 풍습은 모든 티베트인들이 행하는데 사람이 죽으면 높은 산의 지정된 곳으로 옮겨와서 칼로 살을 추려서 벌쳐의 먹이로 주고 뼈는 갈아서 곡식 가루에 섞어 반죽하여 작은 덩어리로 만들 벌쳐가 먹도록 하고 남은 뼈는 바로 근처에서 태워버린다고 한다.

 그러나 총기 사고나 에이즈나 몹쓸 병으로 죽으면 벌쳐에게 먹이로 주지 않고 묻어버린다고 하며 이는 11세기 이후로부터 인도에서 온 불교학파의 영향으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오직 죽은 고기만 먹는 벌쳐에게 마지막으로 적선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도 신기하고 이상하게 들려서 그곳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트레일에서 약간 벗어난 언덕 위 편편한 곳을 가리킨다. 가보았더니 그 옆에는 남은 뼈를 태우는 곳도 있었다. 살을 추릴 때 사용하는 칼, 그리고 죽은 자의 주민등록증이 여러 장 있었고 또 방문 온 순례자들이 두고 간 돈이 수북이 놓여 있었지만 누구하나 그 돈을 갖고 가는 사람이 없는 것도 이 풍습의 일부였다. 티베트인들이 이곳에 와서 합장하고 절을 하기도 하고 그곳에 몸을 눕혔다가 가는 모습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주로 아침에 ‘하늘장사’를 지낸다고 한다.

살을 도려낼 때 사용하는 칼과 죽은 자의 신분증들

Sky Burial 하는 장소와 바로 옆에 있는 남은 부분을 화장하는 장소


Scott Kim

2012.02.14 19:03:21
*.194.226.32

자세한 설명과 세세한 사진으로 "생동감"있는 여행기입니다.  Thank you.

SunWoo

2012.02.14 22:57:59
*.205.44.68

여행을 가지 않고도 여행의 체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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