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묘미

조회 수 3009 추천 수 0 2010.06.30 12:37:32
역사는 흥미로울 뿐 아니라 많은 교훈을 담고 있다. 그것이 동서고금을 통해 현인들이 역사를 쓰고 읽는 까닭이다. 역사가 주는 큰 교훈 중 하나는 경천동지할 큰 사건도 작은 일에서 비롯되는 수가 많다는 점이다. 주역은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아들이 아비를 죽이는 일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역사의 또 하나 특징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뜻밖의 사건이 생기고 또 그것이 의외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역사는 그래서 재미있다. 항상 예상되는 일만 일어나고 그것이 뻔한 결과를 낳는다면 역사를 공부할 사람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가장 위대한 역사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의 싸움을 그 때까지 벌어진 전쟁 중 가장 큰 사건으로 지목하고 전쟁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다. 장장 30년에 걸친 이 내전으로 당시 서양 최강이었던 그리스는 자멸했다.

그러나 이 큰 전쟁도 처음은 코시라와 포티데아 같은 이름 없는 도시국가의 분쟁에서 시작됐다. 이 작은 도시국가들이 서로 생존을 위해 동맹을 끌어들이다가 결국은 맹주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개입하게 되고 이것이 그리스의 몰락을 가져온 것이다. 아테네가 중립을 표방한 멜로스 섬을 쳐들어가면서 남긴 “강자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약자는 당해야할 일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만 힘이 지배하는 정치의 현실을 밝힌 명언으로 남아 있다.

역시 당시 사상 최대 전쟁이었던 제1차 대전도 유럽의 변두리인 사라예보에서 페르디난드 대공이 암살되면서 벌어졌다. 대공이 첫 번째 암살 기도였던 수류탄 투척을 피한 후 황급히 귀국했거나 이 사건으로 다친 사람들을 위문하기 위해 병원에 들른 후 운전사가 길만 잘못 들지 않았더라도 암살자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1차 대전의 참화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최근 벌어진 전쟁 중 작지만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것을 들라면 포클랜드 전을 빼놓을 수 없다. 1982년 4월 아르헨티나의 군부는 느닷없이 영국령인 포클랜드 섬을 점령했다. 머나먼 남대서양의 작은 섬을 포기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영국은 과감한 반격을 감행했고 두 달 만에 아르헨티나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이 전쟁 승리로 당시 반인플레, 반노조 정책을 폈다 고실업으로 정치적 곤경에 빠져 있던 대처 정부의 인기는 하늘 높을 줄 모르게 치솟았고 다음 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둬 자유 시장 경제로의 개혁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됐다. 반면 인권 침해로 국민들의 반발을 사던 아르헨티나 군부는 참패로 신망을 완전히 잃고 몰락했다. 아르헨티나 민주화는 가깝게는 남미, 멀리는 세계 민주화의 도화선이 됐다. 20세기 후반의 대세인 시장 경제와 민주화는 포클랜드 전쟁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주말 토론토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천안함 사태로 야기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고 전시 작전권 환수를 2015년으로 연기하고 3년이나 발 묶여 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인준을 11월 후 추진하겠다는데 합의했다. 김정일 권력 승계 작업이 진행 중인 북한의 호전적 도발 행위가 계속될 것이 예상되는 지금 한반도 안정을 위해서는 한미 군사 동맹과 FTA를 통한 경제적 결속을 강화하는 것이 긴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본 셈이다.

6.25가 할퀴고 간 후 지난 60년 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을 담보한 가장 중요한 버팀목은 굳건한 한미동맹이다. 끊임없는 북한의 위협과 점증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상쇄하는 유일한 수단은 한미 간의 결속밖에 없다. 북한과 친북 좌파의 가장 큰 목표가 한미 공조의 균열인 것도 같은 이치다. 천안함이 한동안 소원했던 한미 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데 기여하는 것을 보며 뜻밖의 사건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역사의 묘미를 다시 한 번 음미하게 된다.


민경훈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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