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김형욱(金炯旭)과 최덕신(崔德新)의 배신에 마음을 많이 상했던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박 대통령 밑에서 고관대작을 지냈다. 속된 말로 호의호식했던 사람들이다.

내가 공부하러 미국에 잠시 가 있을 때 미국에 와 있던 최덕신은 교포를 상대로 반정부 강연을 하고 다녔다. 그는 이미 한국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미국 교포 신문에 최의 행각이 보도되었다. 최는 교포들에게 육 여사 피격 당시 자신은 국립극장 2층에 있었는데 육 여사 저격범은 문세광이 아니라 박종규 경호실장이었다고 했다. 당시 북한에서 남쪽으로 날려 보낸 삐라의 내용과 똑같은 헛소리를 하고 다녔다.

최덕신은 박 대통령 밑에서 외무장관과 서독주재 대사를 지냈다. 유신선포 당시에는 천도교 교령이었으며 ‘유신학술원’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스스로 원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덕신은 천도교 내부에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자 교령직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도망치듯 가고 말았다.

그런 그가 미국에서 반한 인사로 돌변했다. 그러나 미국 CBS-TV 방송을 통해 육 여사 피격 당시의 현장을 생생히 본 교포들이 최의 허황한 소리를 믿을 리가 만무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미 의회에서 반정부적인 증언을 했다. 인간들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권력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인가?

나는 학업을 마치고 귀국해서 박 대통령에게 최덕신의 행각을 말씀드렸다. 박 대통령은 “최덕신이 천도교 교령으로 있을 때 안 되는 일도 무리를 하면서까지 도와주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아무래도 내가 인덕이 없는 모양이다”라고 말하면서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최덕신은 그 후 북한으로 가 그곳에서 죽은 후에 ‘열사릉’이란 곳에 묻혔다고 한다.

고독한 초인(超人)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돌연한 죽음 이후에는 아무리 평소와 같이 생활한다 해도 쓸쓸함이 주변을 감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박 대통령은 늦은 밤 거실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다가 의자에 앉아 잠이 든 적도 있었다. 부속실 당직 비서관에 따르면 조그만 체구의 박 대통령이 소파에 누워 주무시는 것을 깨워 침실로 들어가게 한 일이 몇 차례 있었다고 했다. 한번은 부속실 근무자에게 “내가 밤에 잠이 깨면 배가 고프니 내 방에 과자 좀 갖다 놓으라”고 했다고 한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관저인 청와대에 살면서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 후 밤중에 배가 고프다며 과자조각을 찾는다는 것을 일반인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혹자들은 박 대통령이 측근들과의 잦은 술자리를 가진 것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밤이면 절간처럼 고적한 청와대에서 텔레비전을 벗 삼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겠는가. 외롭거나 괴로우면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는 우리네와 박 대통령이 다를 게 없고 그것이 또한 인지상정이 아닌가.

경호실 한 야간 근무자에 따르면 가끔 밤에 대통령께서 침실 창가에서 부시는 처량한 단소 소리에 마음이 울적해지더라고 했다. 단장(斷腸)의 사부곡(思婦曲)이 이런 것이 아닐까…. 그는 강인한 의지의 절대 권력자였지만 고독과의 싸움에서는 이렇게 물러설 수밖에 없는 초라하고 소박한 한 인간이었다.

측근들의 눈에 비친 박 대통령은 엄하기는 했지만 소탈하고 인정 넘치는 대통령이었고 평생 나라를 위해 일만 하다가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영도자였다.

너무도 인간적인…

1979년 어느 날 밤 박 대통령은 신직수 법률담당 특보, 유혁인(柳赫仁) 정치담당 수석비서관 등을 불러서 1층 식당에서 식사와 술을 함께 했다. 박 대통령은 술이 거나해지자 식당 뒷문을 통해 정원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동석한 모 비서관을 붙들고는 귓속말로 말하더란 것이다. 그 비서관이 30여 년 전 나에게 그날 밤의 이야기를 했다.

“저 뒤에 나가 보니까 보초가 없어 풀밭에다 소변을 보고 왔는데 자네도 마려우면 지금 나갔다가 와.”
지금도 당시의 그 비서관은 그날 밤의 박 대통령의 소탈함과 인간적인 면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비서관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의 김기춘(金淇春) 비서실장이다.

새까만 부하인 나에게 막걸리를 권하면서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주던 때의 박 대통령은 절대 권력이 바꿔놓지 못한 소박한 한 인간의 모습 그대로였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318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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